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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진로진학 상담실에서] 슬기로운 교사는 영감을 준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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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진학 상담실에서] 슬기로운 교사는 영감을 준다


이십여 년 전, 생각이 깊은 후배 교사가 선물로 준 "배움의 도"라는 아주 얇은 책을 펴보면서 교직을 놓아버리려던 마음을 다잡았고, 가르침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삼십 년도 넘는 시간들을 교사로 살아와 버렸다.

"슬기로운 교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하지 않는 일이 없다"라는 책의 구절을 참 좋아한다. 천성이 게으르게 태어난 나는 이 말을 교훈처럼 생각하며 덜 일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얕은꾀를 부리는 편이다.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참스승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만 가득 찬 어설픈 교사임을 늘 확인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입시를 앞둔 3학년들의 첫 진로시간 제일 앞줄에 앉은 한 학생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도 들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다. "어디 아프냐? 기숙사 생활이 많이 피곤한가 보네!" 하면서 어깨를 흔들었더니 학생은 인상을 찌푸리며 날 선 말을 뱉어낸다. "저는 어차피 성적도 안 나오고 정시로 갈 건데 학생부종합전형하고는 상관도 없으니 들어봐야 도움도 안 되잖아요."

꾸짖고 싶었지만 감정을 누르고 공자의 일화로 화제를 돌렸다. "공자가 길을 가다가 길 가운데서 대변을 누는 아이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더니 길 가장자리에서 소변보는 아이에겐 꾸중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길 가운데서 대변을 누는 아이는 아직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이이기에 혼내지 않았지만 길 가장자리에서 소변보는 아이는 수치스러움을 알 만한 나이인데 그랬기에 혼을 내 주었다고 하네. 자네는 대변보는 아이인가? 소변보는 아이인가?"라고 물었더니 몇 마디 변명을 하다가 "이쯤 되면 제가 잘못했다고 빌어야겠네요. 쉬는 시간에 진로실로 찾아가겠습니다"라면서 자신의 예의 없음을 인정하며 누그러뜨린다. 그 일 이후 "소변보는 아이?"와는 레포가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진로상담을 받으며 예의 바른 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2학년 첫 진로시간이다. 자신의 진로 노트에 브랜드명을 붙여보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진서"라고 붙였다. 이유인즉슨 "진짜 서울대 가고 싶어서"라고 했다. 반 친구들 모두 웃음이 터졌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비전이 없는 꿈이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진서"에게 비전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 후 다중지능검사를 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은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 극복해 보라고 했더니 "진서"는 자연지능이 부족하다고 화분에 씨앗을 심어 키워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과 마주칠 때마다 "진서"라고 불러주고 "진서"는 자신이 심은 화분에 초록색 싹이 터서 자라고 있음을 자랑하며 지나간다. 나는 진서에게 비전을 심어 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성공만을 꿈꾸다가 자신의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깨우쳐주고 싶다. 포산고 진로시간 학습목표는 "참 사람되기!", 나의 진로교육 목표는 "큰 그릇 만들기!"이다. 남은 교직생활 제자들과 즐겁게 생활하며 영감을 주는 참스승으로 살아내고 싶다.

김정곤 포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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